“만일 내가 남들과 같고, 나 자신을 유별나게 하는 사상이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나의 관습이나 옷이나 생각을 집단의 유형에 일치시 킨다면 나는 구제된다.” 에리히 프롬 저(著) 황문수 역(譯)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9-3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로 이런 심리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사람들은 획일화되기를 강요 받는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일치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프롬은 바로 이것이 현대인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전체주의적 획일성 으로 귀환하려는 심리적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1933년 히틀러가 대두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귀화했 습니다. 프롬이 보기에 인간은 자연의 지배, 절대주의 국가의 지배를 극복하고 자유를 확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째서, 더군다나 괴테와 실러,바하와 베이토벤을 배출한 나라가, 자유를 포기하고 히 틀러 같은 광인(狂人)에게 열광했는 지, 고통스럽게 분석하였습니다. 자유란, 인간이 자기의 삶을 자발적으로 책임있게 결단하는 행위입니 다. 자유를 확대해 간 인간은 스스로 결단하며 책임지는 자유가 너무 버거워졌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같은 비합리적인 권위에 자신을 복속 시키고, 대신에 ‘안전’
“무대 장치가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식사,전차,네 시간의 노동, 식사,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화,수, 목,금,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 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저(著) 김화영 역(譯) 《시지프신화》 (민음사, 2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시지프 신화》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으 로, ‘부조리(不條理, absurd)’의 자각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은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짜여 있습니다. 출근, 일, 식사, 수면, 주말을 기다리는 루틴은 익숙하고 안 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적 행위가 아니라 습관에 의해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삶입니다. 이 루틴 속에서 인간은 생각 없이 ‘살 아지는 존재(living being lived)’가 됩니다. 카뮈는 이런 삶을 ‘의 식이 잠든 상태’라고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무대의 세트 (삶의 틀)가 무너지는 듯한 체험이 찾아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라는 글귀가 버스를 따라 둥실 떠갑니다.” 김미라 저(著) 《위로》 (샘터, 8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도 자유이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큰 자유입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고 있 습니다. 해야 할 일, 쌓인 메시지, 끝나지 않는 일정표…. 그러나 ‘아 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그 모든 ‘해야 함’에서 벗어나 ‘존재 함’으로 돌아가는 자유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집처럼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시간, 이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나를 다시 빚는 시간입니다. 빈 그릇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빈 집은 누구나 쉬어갈 수 있습니다. 나를 빈집처럼 비워두는 시간, 아무것도 채우지 않는 시 간.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빚어집니다. 멈춤은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이며, 내 안의 소음을 잠재우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거룩한 쉼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빈집처럼 비워진 마음, 그곳에 주님이
하창수 : 선생님의 개성적 글쓰기는 어떤 작가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소설가’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외수 : 그렇지 않다.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많은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 이외수 저(著) 《마음에서 마음으로》 (김영사, 34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그 독특하고도 개성 넘치는 해학스러운 문체로 유명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 속에서 그 문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를 읽으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부럽고 신 기했다(중략). 막심 고리키는 나에게 그림으로 처면 고흐와 같은 존재 다. 나는 그에게 쉽게 이입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 이야기를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내 작가로는 김동인, 이상, 이제하,김승옥으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다. 특히 1970년대에 나와 같이 활동했던 작가들은 모두 나에게 문학적 자극과 용기를 줬다. 김원우, 윤후명, 이문열, 박범신, 김성동은 좋은 벗이기도 했고, 문학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쳤다. 좋은 의미에서 경쟁자들이었다. 그들의 치열함을 보면서, 그 들과 같은 시대의 작가라는 사실에 행복했다.”(34-35쪽)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같은 색깔을 주지 않으셨
“「인디안 썸머」란 영화로 기억되는데, 그 영화를 보면 아내에 대한 열등감이 강한 남편이 아내를 방에 가둔 채로 삽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게 되고, 나중에 남편은 정신이상 증세로 자살하게 됩니 다. 그리고 아내는 살인혐의로 구속됩니다. 결국 아내가 사형수로 전락 하는 비극적인 스토리입니다(중략). 열등감이 있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 경우가 많습니다 (중략). 지적인 면이나 능력 면에서 한쪽이 열등감을 갖게 되면 상대가 내게서 달아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상대를 자기 우리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최복현 저(著) 《저녁의 명상》 (들녘미디어, 206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4:18) 두려움은 사랑을 왜곡시킵니다. 내가 버림받을까 두려워 상대를 통제 하려 하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 상대를 억누르려 합니다. 그때 사랑은 더 이상 서로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서로를 질식시키는 사슬이 됩니다. 열등감 속의 사랑은 상대를 ‘내 소유’로 만들려 합니다. 열등감의 뿌리에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존감은 처음부터 낮은 게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 인해 낮아지게 되어 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껴안고 있다거나 나를 버려가며 그런 사람들 곁에 있기 시작할 때부터 자존감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거지. 동그라미,새벽 세시 공저(共著) 《그 시간 속 너와 나》 (경향BP, 1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처음부터 존귀했습니다. 사람에게 맞추느라 하나님께서 주신 존귀한 나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있는 사람, 나의 자존심을 떨어트리는 사 람, 나의 자존감을 낮추려는 사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관계.” (113쪽) 사랑에도 경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셨으니, 나도 모든 사람을 품어야지.” 그 마음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자기 파괴적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품으셨지만, 바리새인의 독설에는 단호히 진 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관계 속에서 나의 영혼이 계속 무너지고,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함을 잃어버린다면, 그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