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깎아내리면서 되찾는 자존감은 자존감이 아니라 그저 열등감이 다. 내가 남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알량한 감정을 내 자신을 세우는 근 본인 자존감으로 포장하지 마라.” 동그라미,새벽 세시 공저(共著) 《그 시간 속 너와 나》 (경향BP, 9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말은 상대를 향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내부의 불안을 가리기 위한 방패일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자존감은 비교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자부심에서 나옵니다. 그 러나 열등감은 그 힘이 부족할 때 가장 쉬운 길, 즉 남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 순간에는 통쾌할지 몰라도,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되어 돌아옵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도끼로 자신의 발등을 찍으면서 으스대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165쪽) 남을 깎아내리며 얻는 우월감은 자존감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아가 내 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남과 비교해서 존귀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 자체로 보배롭고 존귀한
“독일의 최고 시인이자 작가인 괴테의 역작인《파우스트》는 그의 나이 23세 때 쓰기 시작해 무려 59년이나 걸렸다. 그의 나이 82세 때 탈고를 했으니 그 긴 세월 동안(중략) 그가 쓴 《파우스트》는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옥림 저(著)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부터다》(미래 문화사, 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파우스트》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작품의 규모나 철학적 깊이 때문 만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생의 전부를 걸고 끝내 놓지 않 았던 질문의 기록입니다. 스물셋 청년이 던진 물음은 팔십 노인에게까지 미완으로 남아, 평생을 그의 곁을 맴돌았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빠른 답을 재촉하지만, 진정한 사유는 시간의 두께를 요 구합니다. 《파우스트》는 바로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 작품입니다. 괴테는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미완의 상태로 질문을 익 혀갔고, 그 물음이 익어가는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방황했고, 실패했고, 다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습니다. 완성은 재능의 속도가 아니라 인내의 깊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했 습니다. 삶을 다 써서야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작품이 오
“열등감보다 더 자신을 망치는 악습은 열등감을 위장하기 위해 떨어 대는 허세입니다. 허세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마저도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순금은 순금대로 다른 쇠붙이가 대신할 수 없는 쓸모가 있고 구리는 구 리대로 다른 쇠붙이가 대신할 수 없는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외수 저(著) 《자뻑은 나의 힘》 (해냄, 7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이지만, 허세는 그 감정을 왜곡된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선택입니다. 허세를 부릴수록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꾸며야 하고,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허세는 단지 외부를 속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결국 자기 신뢰까지 갉아먹게 됩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연 기하다 보면, 내면은 점점 공허해집니다. 또한 허세는 관계 속에서도 균열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포장보다 진짜 온기를 느끼는 존재 곁에 오래 머물기 때문입니다. 순금의 쓰임이 다르고 구리의 쓰임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창조하셨고, 우리
“나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장 건강한 사람도, 가장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도, 가장 지능이 우수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이유와 살아남아서 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허병민 저(著) 《인생이 하나의 질문이라면》 (북클라우드, 8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힘도 세고 속도도 빨랐던 여우는 토 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여우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토 끼는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절실함의 차이 때문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 「시인」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배 고플 때 지던 짐 배 부르니 못 지겠네.” 고난 속에서 그리도 간절히 기도하던 성도가 배부름이 오니 하나님을 밋밋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배우 ○○○씨가 강호동씨가 인도하는‘무릎팍 도사’ 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 제일 연기가 잘 됩니까?” “생계가 달려있을 때 제일 잘 됩니다.” 배고픈 사람은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어떤 음식도 그저 그렇습니다. 일도 그러합니다. 인생을 승리하려면 세 가지 ‘실’ 이 필요합니다. ‘진실’ ‘성실’ 그리고 ‘절실
“그는 또 하느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했으나 나는 그에게로 다가서며,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조금밖에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 하려 했다. 나는 하느님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중략). ‘당신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때,이유는 모르 겠지만,내 속에서 뭔가가 툭 터져버렸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 저(著) 이혜윤 역(譯) 《이방인》(동서문화사, 92-9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사형을 앞두고 사제를 거부하는 장면으로, 실존주의적 인간이 “신 없는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유일한 주체로 서려는 결단”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실존주의는 ‘무의미하게 던져진 이 세상’ 속에서 인간 스스로가 의 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자기가 선택한 삶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뫼르소의 마지막 모습은 끝까지 혼자 서고자 하는 인간의 비장한 자존 선언입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조차 “누군가에게 기대어 의미를 받는 존재”가 되기를 거부합니다. 고함을 지르고, 마지막 남은 자율성을 붙
『파우스트』의 모든 메시지는 한 구절에 압축된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이르려는 곳이 있기에,마음의 솟구침이 있기에 방황한다는 이 큰 메시 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된다. 전영애 저(著) 《시인의 집》 (문학동네, 4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보통 방황은 방향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길을 몰라 헤매는 상태, 미성숙 이나 실패의 징표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다르게 말합니다. 방황은 목표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목표가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르려는 곳이 없으면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이 솟구 치지 않는다면, 지금 있는 자리에 머무는 일이 가장 편안할 테니까요.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만족하지 못하 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가 방황하는 이유는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 겠다는 ‘지향(志向)’ 때문입니다. 더 알고 싶고, 더 살아보고 싶고, 더 깊이 닿고 싶다는 소망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위험하게 만들고, 때로는 추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모해 보이는 듯한 도전과 위험이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파우스트』의 핵심은, 우리 인생이 ‘완성’이 아니라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