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장치가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식사,전차,네 시간의 노동,
식사,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화,수, 목,금,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
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저(著) 김화영 역(譯) 《시지프신화》 (민음사, 2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시지프 신화》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으
로, ‘부조리(不條理, absurd)’의 자각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은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짜여
있습니다. 출근, 일, 식사, 수면, 주말을 기다리는 루틴은 익숙하고 안
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적 행위가 아니라 습관에 의해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삶입니다. 이 루틴 속에서 인간은 생각 없이 ‘살
아지는 존재(living being lived)’가 됩니다. 카뮈는 이런 삶을 ‘의
식이 잠든 상태’라고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무대의 세트
(삶의 틀)가 무너지는 듯한 체험이 찾아옵니다.
그때 사람은 일상 속에서 당연히 여겼던 모든 것—삶의 의미,
노력의 이유, 습관의 목적—이 설명되지 않는 공허함으로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무대 장치 붕괴’의 순간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자각이 일어나면서 일상의 무의미함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세계가 인간의 기대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
간, “삶과 의미 사이의 간극”—바로 부조리(Absurd)—가 드러나는 것
입니다. 이 ‘왜’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 의미에 대한
반성의 시작입니다.
이는 신앙에서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깊은 신앙은 종종 이 ‘무대
장치 붕괴’의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은 세상의 방식에 취해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삶의 공허함을 직시하게 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이 탄식이야말로 한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철저한 ‘무대 장치
붕괴’의 고백입니다.
카뮈가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무의미’를 직시했다
면, 신앙은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참된 의미를 향한 영적 갈망을
발견합니다. 세상의 무대 장치가 주는 안정감이 사라진 그 공허함의
자리는, 사실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반석이신 그분을 찾기 시작합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