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삼산면, "아련한 그리움과 싱싱한 채색으로 닥아오는 거문도. 백도"> 김광부 기자
“메닝거 박사가 특별히 주목하는 사실이 있다. 해마다 발표되는 미국의
전국 기도의 날 기념 대통령 선언문에서 ‘죄’ 라는 말이 언급된 것은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언문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그것조차
도 1863년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기도를 요청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메닝거 박사가 주목하고 있다시피, ‘한 나라의 국민
으로서 우리는 한 이십 년전쯤에 ‘죄짓기’를 공식적으로 끝냈다.’”
제이 브리지스 저(著) 오현미 역(譯) 《크리스천이 꼭 이겨야 할
마음의 죄》 (두란노, 2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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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칼 메닝거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작가 피터 반즈는 “뭐라고!
내가 죄인이라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세기 영국에서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난 장벽은,
독자들의 마음에 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완전히 부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1년,신약학자 D. A. 카슨은 대학에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기운 빠지는 일은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죄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사실이
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죄짓는 법은 잘 알고 있지만, 무엇이 죄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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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성도들이 ‘죄’라는 거친 말(?)을 싫어하는 경향들 때문에
교회에서조차 죄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메닝거 교수는 적어도
목사님들과 신학생만큼은 그 본연의 임무인 ‘죄’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듯이 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기독교 또한 그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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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
하니” (막1:4)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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