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제주도에는 '서복동도(徐福東渡)'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구해 오라며 서복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500명을 딸려 영주산(지금의 한라산)으로 보냈다. 서복 일행은 힘든 항해 끝에 마침내 제주도에 도착했고 서복은 상륙지 바위에 '조천(朝天)'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 이곳이 지금의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다. '불로초'를 발견한 서복은 귀국하려 했으나 바다에 안개가 짙고 풍랑이 거센 탓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으로 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사람들은 서복이 떠난 포구를 '서귀포'라 불렀고 현재 제주도의 서귀포시도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영근 이사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서복의 제주도 행적을 연구하기 시작한 인물 중 하나다. 서복의 자료를 보기 위해 지난 1997년 산둥(山東)성 룽커우(龍口)시를 찾아가기도 한 그는 서귀포시에 특별 연구를 위한 협회 설립을 제안했다. 당시 서복의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고 행적의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1998년 협회가 설립됐다.
이후 협회의 주도로 중·일·한 연구자들이 매년 제주에서 열리는 서복 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이전까지 20회에 가까운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서복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면서 기념 활동에 참여하는 제주 도민들도 점차 늘고 있다.
2003년 제주도는 서복전시관과 서복공원을 건립하고 그 안에 서복의 동상도 세웠다. 서복전시관에는 서복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보존돼 있다. 지난 5월 서귀포시는 '서복거리' 지정 기념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 초청된 왕루신(王魯新) 주제주중국총영사를 비롯해 이종우 당시 서귀포시장, 이영근 이사장 등 양국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이사장은 서복 관련 행사를 통해 서복과 연관된 역사에 양국 국민의 이해가 깊어지고 양국 간 인문 교류가 촉진됐다고 전했다. 앞으로 협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각종 교류 활동을 서서히 재개할 계획이다.
당시에는 천신만고의 노력이 필요했던 여행길이 이제는 한두 시간이면 가능해질 줄 서복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제주도는 이제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이사장은 일찍이 평화의 사절 역할을 하며 주변국 국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도움을 주었던 서복의 역사를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