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1759년에 이런 글을 썼다.
“이 세계가 그토록 바쁘게 움직이며 애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와 권력과 우월함을 추구하는가? 생존의 필
요를 충족하기 위함인가?”
스미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노동자들에게는
음식과 거주지와 가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
엇인가? 스미스는 이렇게 썼다.
“남들의 눈에 띄고, 관심을 끌고,주목받고, 사람들의 공감과 호의와
인정을 얻어내는 것,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이익이다.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편안함이나 쾌락이 아니라 허영심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
건의 편안함이나 편리함보다 그 물건에 따라오는 타인의 관심을 더 중
요하게 생각한다.
모건 하우절 저(著) 박영준 역(譯) 《돈의 방정식》
(서삼삼독, 5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거장(巨匠) 아담 스미스는 돈의 흐름에 앞서 인간의 시선을 읽었습니다.
기본적인 배를 채우기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시선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바쁜 것은, 타
인의 눈을 의식하는 마음입니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통해 자신을 ‘보이게’ 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목받고 싶은 존
재’입니다. 명품 가방 안에 담긴 것은 지갑이 아니라 ‘나를 봐달라’
는 외침입니다.
남의 눈동자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삶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허무일
뿐입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삶은 끝없는 결핍을 낳지만,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은
이미 충만합니다. 박수는 잠시지만, 은혜는 영원합니다.
관객을 위한 연극을 멈추고, 하나님의 시선을 붙들 때 비로소 하늘이
주신 ‘진짜 나’의 평안이 시작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
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