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sympathy’과 ‘공감empathy’은 전혀 다르다.
연민에는 고통 받는 타자의 아픔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며 자기도 모
르게 ‘난 아직 괜찮다’ 혹은 ‘저들보다 나는 편안하다’고 느끼는
일종의 우월감이 깔려 있다. 참혹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안방
에서 지켜보고 얼마씩을 기부하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감정이다.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남을 걱정하는 기
술이 연민이라면,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태도가 공감인
것이다.”
정여울 저(著) 《그림자 여행》 (추수밭, 208-209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연민은 ‘그들은 고통받지만 나는 안전하다’는 판단으로 타인의 고통을
먼 3인칭의 문제로 만듭니다.
공감은 ‘당신의 고통은 바로 나의 고통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
정하고 진심으로 아파하는 뜨거운 2인칭의 문제입니다.
연민은 ‘그들’을 향하고, 공감은‘그대’를 향합니다.
연민은 ‘저들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공감은 ‘내가 거기 있겠다’고 움직입니다.
연민은 거리를 둡니다, 공감은 거리를 지웁니다. 연민은 손을 내밀 듯
하지만, 끝내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공감은 자리를 떠나, 그 고통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갑니다. 높은 담벼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른 눈물을 훔치는 건 사랑일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아픔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신’ 사건이
아니라, 그 아픔 속으로 ‘뛰어드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연민이 아
니라 공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아픔 속으로 내려오신 사건입니
다. 예수님은 눈물 몇 방울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내어주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
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
라.” (히4:15)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