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는 감성과 관찰력, 소통의 기술, 그리고 인간의 도리와 상식에
이르기까지 삶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에서 무엇
보다 중요한 덕목은 ‘사무사(思無邪)’생각에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중략). 백 년의 고민을 한 마디로 삼킨 것을 시라고 일컫는다.”
조윤제 저(著) 《다산의 마지막 질문》 (청림출판, 6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는 재능이 아니라 진실에서 태어납니다. 백 년의 고민을 한 문장으로
남기는 시는 끝까지 줄여 최소의 언어로 말한 진실입니다. 거짓된 마음
으로 쓴 언어는 길어도 시가 못 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쓴 언어는 짧
아도 시가 됩니다.
‘사무사(思無邪)’“생각에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시를 닮기 위해 시를 읽는다.” (59쪽)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아름다운 표현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거짓
없는 마음을 닮기 위함입니다. 진실한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서입니다.
백 년을 살아도 한 마디 진심을 삼키지 못한 사람이 있고, 짧은 생애
에도 평생의 무게를 한 줄에 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보여주기 위한
수식’과 ‘살기 위한 진실’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18:11)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의 긴 문장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
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
였느니라.” (눅18:13)
이것은 백 년의 고민을 한 마디로 삼킨, 시보다 더 시 같은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은 길게 말했지만, 하나님께 닿지 않았고 세리는 짧게 울었지
만, 하나님께 닿았습니다. 백 마디 수식어로 치장한 완벽한 문장보다,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뱉어낸 상한 심령이 주의 마음을 흔듭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