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은 앎의 추구와 직결된다. 앓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볼
수 있다. 힘으로서의 앎을 추구하는 길과 성찰로서의 앎을 추구하는 길.
전자는 근대과학으로 이어졌고,후자는 인문학,즉 철학과 역사와 문학
으로 계승되었다. 책을 읽는 목적도 비슷하게 나눠 볼 수 있다. 힘의
확장으로서의 읽기와 성찰로서의 읽기다.”
전병근 저(著)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유유, 20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앎의 길을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힘으로서의 앎과 성찰로서의 앎.
전자는 세계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근대과학으로 이어졌고,
후자는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과 역사와 문학 전통으로 계승되었습니다.
힘으로서의 읽기는 현실을 개선할 지식을 얻기 위함이고,
성찰로서의 읽기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기 위함입니다.
질병을 치료하고 빈곤을 극복하는 앎도 필요하며,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영혼을 돌아보는 앎도 필요합니다.
진정한 앎은 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됩니다.
세계를 변화시킬 힘과 자신을 성찰할 깊이를 동시에 갖춘 앎.
독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지식과 자신을 깨우칠 통찰을 함께
주는 고마운 행위입니다.
성경 읽기 또한 앎의 두 길을 함께 걷게 하는 독서입니다.
성경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하늘만 바라보게 하지 않고, 세상을
책임 있게 살아갈 힘을 길러 줍니다. 동시에 성경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
며,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합니다.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는 성경을 통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대영제
국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노예 무역이 성경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죄악
임을 깨닫고, 20년 넘게 의회에서 비난과 위협을 견디며 투쟁했습니다.
그 결과 1807년 노예 무역 폐지법, 1833년 노예제 자체를 금지하는 법
안을 통과시키며 현대 인권 운동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