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著) 문현미 역(譯) 《말테의 수기》
(민음사, 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주인공 말테가 파리라는 도시를 바라보며 느끼는 실존적 공
포와 내면의 낯섦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스물
여덟 살의 청년 시인 릴케가 파리에 도착해 느낀 첫 감각은 공포였습니
다. 생명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아이러니하
게도 죽음이었습니다. 릴케가 말한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 아닙니다.
더 깊은 차원의 죽음, 영혼이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죽음이었습니다. 타
인의 고통에 무뎌지고,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조차 잃어버리는 상태. 숨은 쉬
지만 살아 있지 않은, 생존하지만 생명이 없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도시는 더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두르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애씁니다. 도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약속합니다.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고, 더 많이 가지면 안
정될 것이고, 더 높이 올라가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하
지만 그 약속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종종 더 깊은 공허함입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이루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성취, 함께 있
어도 외로운 관계들. 이것이 릴케가 본 풍경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예언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이미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2:13)
우리는 생수의 샘을 두고 터진 웅덩이를 파느라 평생을 보냅니다. 살기
위해 달려가지만, 정작 생명의 근원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집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잃어버렸던 감각이 되살아나고, 메마른
영혼이 다시 숨을 쉽니다. 진짜 생명은 도시에 있지 않고, 우리의 마
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