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은 전진의 첫걸음에 불과하며 전진은 또 다른 후진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밤과 낮, 끝과 시작, 들숨과 날숨, 듣기와 말하기처럼
전진과 후진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도는 두 마리 뱀과 같다(중략).
전진은 좋은 것이고 후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그
러한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옛 사람들은 양음(陽陰)이라 하지 않고 음양
(陰陽)이라 하였으며, 시종(始終)이라 하지 않고 종시(終始)라고 하였
던 것이다.”
이성복 저(著)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문학동네, 229-23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진’은 좋은 것이고 ‘후진’은 나쁜 것, 앞으로 가는
사람은 성장하고 있는 사람,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분법 속에 자신과 타인을 가둡니다. 멈춤, 흔들림, 후퇴, 방황은 언
제나 부끄러운 이름표였습니다. 그러나 . 시인이 말하듯, 전진과 후진은
서로의 꼬리를 문 두 마리의 뱀입니다. 후진은 실패가 아니라 전진만을
향해 달리던 속도를 낮춰 삶의 균형을 되찾는 기회입니다. 물러섬은 망
설임이 아니라 사유의 여백이고, 돌이켜 보는 것은 성숙의 다른 표현
입니다.
하나님은 멈춤과 후퇴의 시간을 실패로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는 은혜의 공간으로 사용하십니다.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이 말씀은 멈춤이 곧 무력함이 아니라 더 깊은 하나님 인식의 문임을
알려줍니다. 물러섬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마음을 낮추는 과정입니다.
전진의 열심 속에서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
나님과 동행하는 걸음을 되찾습니다. 멈춤, 후진 또한 하나님의 큰 섭
리입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