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의 유럽에서 주문(呪文)으로 겨울을 길게 했다는 자백을 받아
내어 118명의 여인들을 불 속에 던져 넣음으로 시작된 마녀사냥의 발단도
6월까지 계속된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지배 계층들과
지식인들까지 비이성적인 광기로 몰아간 것은 바로 ‘오지 않는 봄’
이었던 것이다.”
최대봉 저(著) 《낭만시절》(작가, 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류는 소빙하기(Little Ice Age)를 겪었습니다.
특히 1560년~1660년 사이는 기온이 최저점에 달해 냉해, 홍수, 가축의
병사가 잇따랐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이런 기상 이변을 초자연
적인 힘, 즉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농작물이 냉해로
죽으면 사람들은 분노를 분출할 대상을 찾았고, 사회적 약자인 여인
들을 ‘날씨를 조종해 겨울을 길게 만든 마녀’로 몰아 희생양 삼았습니
다. 특히, 1562년 독일 지역에서 극심한 우박과 한파로 포도 농사를
망치자, 한꺼번에 63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처형한 비젠슈타이그
(Wiesensteig) 사건이 유명합니다.
대중적으로 마녀사냥을 중세의 암흑기의 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큰 오해 중 하나입니다. 마녀사냥이 광기 어린 수준으로 폭발한 시기는
중세(5~15세기)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근세
1560년경부터 1650년경까지(16~17세기)입니다. 이 시기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충돌하던 시대, 국가 권력이 강화되던 시기, 인쇄술 확산
으로 공포가 빠르게 퍼지던 시기, 기후 악화(소빙기)와 전쟁, 전염병이
겹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약 4만~6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독일 지역에서 가장 극심했습니다. 마녀사냥은 무지한 민중들
만의 폭동이 아니라, 법학자, 신학자, 고위 관료들이 정교한 논리를 만
들어 체계적으로 집행한 국가적 사업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마녀사냥을 중세의 무지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로 그것은
이성이 깨어났다고 자부하던 근세의 법과 제도, 그릇된 확신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집단적 광기였습니다. 오지 않는 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보다 먼저 분노의 대상을 찾으려는 인간의 죄성이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시대의 불안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또 다른 ‘마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반복한다면 비극의 반복이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