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사업의 담당자로서 대학생들을 인솔하여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는 사적지들을 탐방하고 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일명 노령임시정부라고도 불리는 대한국민의회 건물도 볼 수 있었는데,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3·1운동 직후 각지에 상해 임시정부, 한성정부, 대한국민의회 등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이후 분산된 독립운동의 역량을 집중하고 우리 민족을 대표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이에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여 1990년부터 2018년까지 4월 13일로 기념해 오다가 2019년부터 각종 사료에서 확인되는 4월 11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이와 같이 4월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이다. 1919년 국권을 상실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 선열들은 자주독립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는 단순한 망명 정부의 출범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대지에 생명이 피어나는 4월은 우리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 세상에 공포되고 민주공화제의 기틀이 마련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보훈부의 일원으로서 매년 맞이하는 4월이지만, 올해로 107주년을 맞는 이번 기념일에는 유독 서울 서대문구의 풍경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 서대문에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거대한 흐름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지난 2022년 서대문구에 개관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하 임시정부기념관)’은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27년간 쉼없이 달렸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고뇌를 방문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기념관입니다.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마주하는 독립의 가치 임시정부기념관을 나와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서대문독립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국가보훈부가 지정한 독립운동 관련 현충
창밖 나무 끝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작은 꽃봉오리들이 사랑스럽게 맺혀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 꽃들이 만개할 때면 전국에서 화려한 꽃구경을 즐기는 인파들로 거리는 더 뜨거워질 것이다.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목전에 두고 문득 107년 전 한반도의 4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졌다.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해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이 땅의 온 민족이 궐기하여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우리 민족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아래 임시정부를 세웠다. 4월 11일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1919년 4월,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 모인 의원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겠다는 우리 민족의 열망을 모아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했다. 임시헌장의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라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왕이 통치하는 시대, 제국의 시대를 끝내고 ‘민(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임시정부는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활동했다
2026년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되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 내음 사이로 살짝 봄이 느껴지는 3월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3·1절로 시작된 3월의 여러 기념일 중에서 ‘서해수호의 날’이 바로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해수호의 날은 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2016년부터 지정된 대한민국의 기념일로,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 등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을 상기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의 서해수호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 아울러 서해수호의 날이 넷째 금요일인 이유는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 공격으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사망한 천안함 피격사건이 2010년 3월 26일 금요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된 2016년으로부터 10년이 흐른 현재, 지구촌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안보환경 속에서 연일 세계 경제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갈등 상황에 놓여있다. 동시에 우리 대한민국은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 화려한 ‘K-번영’의 무대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탱해 주는 거대한 희생이 있었
매년 3월 넷째 금요일,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보다 가슴을 저미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초입이지만, 우리에겐 차가운 심연 속으로 스러져간 55인의 젊은 영웅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준엄한 시간이기도 하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그리고 연평도 포격전까지. 서해의 파도는 그날의 포성을 기억하고, 바다는 여전히 그들이 흘린 뜨거운 피를 품고 흐르고 있다. 2002년 6월의 6명, 2010년 3월의 46명과 한주호 준위, 그리고 그해 11월의 2명. 도합 55명의 별이 서해의 물결 위에 졌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불과 20대 초중반, 누군가에겐 온 우주였을 청춘이었고, 그들이 지켜낸 북방한계선(NLL)은 단순한 해상의 경계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울의 평온한 저녁 식탁을 지키는 울타리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원을 수호하는 보이지 않는 방벽이었다. 국가보훈은 박제된 과거를 추억하는 제례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영웅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여야 한다. 55명의 용사가 남긴 빈자리는 우리 사회가 마땅히 채워야 할 '기억의 부채'다. 보훈의 본질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이 결코 잊히지 않
우리의 달력 속 날짜는 누구에게나 같은 숫자로 적혀 있지만, 그 하루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누군가에게 별다른 일이 없었던 날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생일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입학식이 있는 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다가올 특별한 날을 기다리고, 기념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은 손꼽아 기다려 온 생일이었고, 마침 대한민국과 터키의 한일 월드컵 3·4위 결정전이 열리는 날이었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함께 거리 응원에 나서자 곳곳에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응원 인파가 가득했고, 한여름 날씨보다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 촛불을 껐던 그 날의 풍경은 유년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슬픔의 날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달력은 그날을 ‘제2연평해전’이라고 부른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교전이 발생했고, 대한민국 해군 장병 여섯 명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했다. 누군가에게는 생일로 기억되는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