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신화처럼 소리치는 고래 잡으러”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 의 가사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날, 어깨 위엔 배낭 하나, 마음엔 바람 하나 들고 떠났었습니다. 창
문은 닫히지 않았고,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표도 계획도 없이
어딘가에 고래가 있다는 말 한 마디에 세상이 기차처럼 흔들려도 즐거
웠습니다. 삼등칸의 좁은 좌석,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도
시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던 기적 소리, 삼등칸이면 뭐 어떤가? 좌석에
앉으면 왕자, 문 열리면 시인. 완행열차의 흔들림 속에서 세상과 밀당
하던 그 시절. 그 자유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열차에 쉽게 오를 수 없습니다. 결혼하여 누군가의 남
편, 아내로 산다는 건 기차표를 혼자 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동해
말고 동네 바다마트에 가야 합니다. 배낭 대신 아이의 기저귀 가방을
메야 하며, 완행이 아닌 급행으로 이름 박힌 캐리어를 끌고, 시댁과 처
가를 오고 갑니다. 고래? 그런 거 잡으면 비린내 난다고 혼납니다.
고래는커녕 감기 한 번 잡으면 대박입니다.
물론, 가끔은 그 완행열차가 그립습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던 바다 냄
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웃던 얼굴들, 고래가 있든 없든 상관없던
그 여행...

그럼에도 결혼한 우리는 압니다. 예전엔 고래를 찾아 바다를 헤맸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식탁에서, 아내와 웃는 순간순간에서 나의 고래를 만
난다는 것을. 삼등칸은 못 타도, 삼시 세끼를 같이 먹습니다.
결혼은 자유의 끝, 구속의 시작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또 다른 시작
입니다. 두 문장이 하나의 문단으로 이어지는 일입니다. 처음엔 쉼표도
많고, 오타도 있지만, 끝내 한 편의 시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결혼 생활은 하나님을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일입니다.
두 마음이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믿음을 맞추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5:31)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