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내는 피아노 건반 뒤에는 240개의 쇠줄이 존재한 다. 이 쇠줄들은 피아노 틀에 4만 파운드나 되는 강한 힘으로 매여 있 다. 쇠줄들의 팽팽한 긴장이 깨지면 피아노는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긴장이 유지되는 그대는 언제까지고 평화롭고 아름 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최윤정 저(著) 《흐린 날에도 해는 뜬다》 (처음, 5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스트레스’는 긴장 상태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라는 말은 사람 뿐 만이 아니라 건축물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건축에서는 어떤 건축물이 지진 등과 같은 외부의 압력에 견뎌내는 힘을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계산합니다. 건물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손상이 오지만, 적당하고 균등한 스트레스를 가하면 건물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피아노는 240개의 줄이 팽팽한 긴장 속에 있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 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삶의 균형을 깨뜨리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 히려 삶을 건강하게 유지 시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적당한 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할 때 신앙과 삶은 더욱 신선해지고 건강해집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고 한 스피노자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내일이 아니라. 만일 오늘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하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친구들과 술이나 실컷 마시겠다. 있는 돈을 전부 쇼핑하는 데 쓰겠다.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겠다. 애인을 만나겠다. 자선 사업을 하겠다. 기도를 하겠다. 마지막으로 효도를 하겠다… ” 이강래 저(著) 《가던 길 잠시 멈춰서서》 (문지사, 15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누군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밤에 오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웨슬리는 이렇게 대답습니다. “오늘 밤 예수님이 오신다 해도 제 계획 중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그만큼 웨슬리는 매일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종말론적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 함이니라.” (마24:42)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안드레아 모스코니(Andrea Mosconi)는 수십 년간 일주일 중 6일 아침마다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중략). 이탈리아 크레모나 시청으로 가서 시청 부속 건물인 현악기 박물관으로 들어간다(중략). 현악기 박 물관에는 아마티 가문에서 제작한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한 대, 과르네리 가문에서 제작한 바이올린 두 대, 그리고 안토니오 스트라디 바리가 손수 제작한 바이올린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중략). 세심한 관 리가 필요하다. 손대지 않고 그냥 두면 악기의 울림에 이상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모스코니가 이곳에 오는 이유다.” 맥스 루케이도 저(著) 박상은 역(譯) 《행복 연습》 (생명의말씀사, 18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태리 북부의 도시 크레모나(Cremona)는 75,000여명이 모여 사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17-18세기 전설적인 스트라디바리 일가가 이곳에 살며 바이올린을 제작하였고, 지금도 수 백 명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이곳에 공방을 차려 활동 중입니다. 또한 매년 바이올린과 관련된 박람 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크레모나 시청 부속건물에는 명품 바이올린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크레모나에 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드
“성공의 열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실패의 열쇠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 드는 것이다.” 게리 켈러 & 제이 파파산 공저(共著) 구세희 역(譯) 《원씽》 (비즈니스북스, 24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인정 중독’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 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고 싶다? 참 좋은 소망이다. 이 꿈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이 꿈을 좇아야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 랑받으려면 내가 없어져야 한다. 내 가슴은 까만 숯덩이가 되어야 한 다. 그저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고 내 자신과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규장, 179쪽) )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둘은 날 싫어하 고, 여섯은 관심이 없고, 둘은 나를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성이 가득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등이 없는 완벽한 관계? 트 라우마가 한 조각도 없는 청명한 삶? 모두가 날 좋아하는 삶? 이것은 비현실적인 꿈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어떤 목사가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식이 끝나고 목사가 부 모와 회중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아기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가야, 이 세례를 행함으로써 우리는 너를 앞으로 평생 동안 걸어갈 여행길로 맞아들인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께서 너의 삶을 통해 이루실 일의 시작이란다. 하나님께서 너를 어떻게 만들어 가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너를 어디로 이끄실지, 그래서 어떻게 우리를 놀라게 하실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 다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것뿐이란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 월리엄 월리몬 공저(共著), 김기철 역(譯) 《하나 님의 나그네 된 백성》(복 있는 사람, 81-8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동원목사의 《다시 들어야 할 처음 복음》에 이런 권면이 나옵니다. “기독교 역사에 보면 종종 복음의 초점이 잘못 강조된 다른 복음들이 등장한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참된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가장 보편적이면서 그릇된 복음의 한 형태가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 혹은 ‘번영 신학 (Theology of prosperity) 이라고 생각합니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현대시의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는 폴란드의 여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개미들의 발걸음은 우리가 보기에는 답답한 반복의 연속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그들의 삶에서 위대한 전진입니다. 영어 명언에 “반복하면 완전해 진다(Practice makes perfect)”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명인(名人)은 모두 부단한 반복의 결과입니다. 꾸준히 반복하는 인내 속에 명인 명장(名匠)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반복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탁월함이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오늘도 어제의 것들을 반복하는 듯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습니다. 분명 어제와는 다른, 봉우 리에 한걸음 더 다가간 반복입니다. 훈련 중의 훈련는 반복 훈련입니다. 꾸준히 반복되는 예배와 기도를 통과할 때, 신앙의 거장이 됩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