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 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C.S.루이스 저(著) 장경철 이종태 공역(共譯)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20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제일 실천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이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정연희 시인의 시 「원수를 사랑하라」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 원수를 사랑하여라 /
무슨 말씀입니까 / 주여, 내 하나님이여 이 무슨 말씀입니까 /
내게는 그리도 엄격하시면서 / 어찌 내 원수에게 그리 관대하십니까 /
보아라,나와 함께하는 것아 /
네가 원수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 나는 참을 수가 없구나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용서는 한글로 쓰자면 고작 아홉 획수에 지나지 않지만, 실행하려고
하면 아흔아홉 번은 갈등합니다. 용서의 최대 수혜자는 용서하는 자신인
것을 알면서도 가슴에서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런데 용서를
넘어 사랑까지 하라시니...
하나님은 시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원수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 나는 참을 수가 없구나.”
얼굴은 ‘얼꼴’ 즉 내 영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창입니다. 얼굴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동시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
습니다. 사랑이 크면 사랑의 얼굴이, 미움이 크면 미움의 얼굴이 내 얼
굴에 머물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얼굴이 원수와 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까지는 못하더라도 C.S.루이스의 말처럼 잘해 주기만 하더라도 우
리의 얼굴이 원수의 얼굴이 아니라 주님의 미소로 빛날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6:25,26)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