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가계 천문산 천문호선쇼 공연장, "천문산의 자연을 무대로 연출한 초대형 공연"> 김광부 기자
“서양의 전통 철학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정의해왔다. 쇼펜하우
어는 이러한 정의에 반기를 들면서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보았다.”
박찬국 저(著)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21세기북스, 3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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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전통 철학에서는 이성이 감정과 욕망을 통제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이성이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서양의 전통 형이상학은 인간을 이성적 존
재라고 파악을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 이전에
욕망의 존재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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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말 중에 “의지는 절름발이를 어깨에 메고 가는 힘센 장
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의지와 이성 사이의 관
계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여기서 ‘의지’는 ‘욕망’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식욕에 사로잡혔을 때 뭘 먹고 싶다는
욕망만 강하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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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욕망 자체만 가지고는 식욕을 충족 시키는
방법을 알지를 못합니다. 방법을 개발해 내는 것이 이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식욕 자체만으로는 그것을 채우는 방법을 알지 못한
다는 점에 있어서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욕망을 장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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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서 이성은 방법은 알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도록 냉장
고로 문을 열든가 아니면 식당으로 가도록 우리를 몰아붙이는 것은 욕
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것은 방법만 제시할 뿐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어서 절름발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욕망이 절름발이를 어깨 매고 가면 절름발이인 이성이 “너는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라는 식으로 장님인 욕망에게 알려준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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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끝없는 욕망의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욕망은 만족이 없이 끝없이 전진할 뿐입니다. 좋은 욕망도 있지만,
만족을 모르는 나쁜 욕망은 ‘죄성(罪性)’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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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
하여” (잠30:15)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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