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 풍경"> 김광부 기자
“솜 전투 첫날 독일군은 1분에 300발 이상 발사되는 ‘맥심 기관총’을
사용해 대량 학살을 저질렀습니다(중략). 솜 전투에서 영국군이 숱한
목숨을 희생하고 전진한 거리는 l00m도 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한 영국군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복귀한 뒤에 점호를 하지 않았다.’(중략)
살아남은 병사가 얼마나 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적었기 때
문에 점호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됐던 것입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 저(著) 《벌거벗은 세계사-사건편》
(교보문고, 27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 풍경"> 김광부 기자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처절했던 전투 중 하나인 솜 전투에서 독일군은
기관총이라는 신무기를 앞세워 영국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영국군은 솜 전투에서 약 1500문의 대포를 동원해서 독일군에게 8일
동안 포탄 150만 발을 퍼부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공세에 영국군은 땅
위의 철조망을 비롯한 모든 무기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으로
확신했고, 또 진군만 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 풍경"> 김광부 기자
이런상황에서 영국군은 별다른 긴장 없이 진군하였습니다.
영국군이 느긋하게 걸어오는 동안 포사격을 버틴 독일군은 기관총을 걸어놓고
킬링존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곤 사정없이 난사하여 영국군은 하루 만에
5만 8,0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이 중에서 1만 9,000여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빚고 말았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 풍경"> 김광부 기자
솜 전투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도
사람이 무참히 살육된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난 큰 이유가 바로 신형 무기였던‘맥심 기관총’입니다.
여기서 지휘관들이 시대를 읽지 못한 오류가 큽니다. 기관총이라는 엄
청난 화력의 무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들은 여전히 병력의
숫자가 승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고 줄지어서 앞으로
전진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김광부 기자
인공지능은 솜 전투 때의 기관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기술입니다. 기관총과 사람이 경쟁할 수 없듯이 인간과 인공지능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만년설"> 김광부 기자
말과 경주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미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말과는 경
주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야 합니다. 시대에 흐르는 문명의 이기를 선하
고 강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로마 시민권을 선교하는 데 적절하게 활용하여 복음을 전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만년설"> 김광부 기자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행22:28)
<경건 메일 / 한재욱 목사>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만년설"> 김광부 기자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만년설"> 김광부 기자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 풍경"> 김광부 기자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 십자가 전망대"> 김광부 기자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츠뵐퍼호른산(1,522m) 정상, 십자가 전망대"> 김광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