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홍 발행인 칼럼>
새 정부에 의한 ‘용산시대’가 출범했음에도 제대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절뚝 걸음을 걷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한없이 안타깝고 아프다. 정부 출범 10여일이 지나도록 한덕수 총리후보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 인준이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 형국으로 표류(漂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임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공백을 메꾸기 위해 응급처방으로 몇몇 장관들을 직권으로 임명하여 비상조직을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오는 21일에는 우리의 혈맹국(血盟國)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한한다. 총리 한 사람 세우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다. 발행인인 나는 이 같은 정치행태와 정부 형태를 한 마디로 ‘장애자(障碍者)’의 모습이라고 감히 표현한다.
우리는 간혹 주위에서 몸이 성치 않은 장애아(障碍兒)나 장애우(障碍友)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과 동거하는 부모나 자식, 그리고 식구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께너머로 보고, 느낀다. 지금 국민들이 바라보는 작금(昨今)의 한덕수 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준표류’와 절름발이식의 새 정부 출범 모습과 감회(感懷)가 이와 똑 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야당인 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이 총리후보자의 인준에 부정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전직 총리 이후의 사회활동 전반이 ‘국민 눈높이’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결격사유로 꼽고 있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대선에서의 0,74% 석패’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질타도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국민눈높이’란 어휘에 대한 재성찰(再省察)이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지도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아무 곳에나 ‘국민’이란 말과 ‘눈높이’란 어휘를 마구 끌어다 쓴다.
말(言)이나 언어(言語) 가운데는 격이 낮은 말과 거룩하며 숭고한 언어가 분명히 존재한다. 상스러운 말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말들도 많다. 특히 성(聖)스러운 말이나 언어를 아무데나 함부로 끌어다 쓴다면 이는 그 어휘의 참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라는 말과 ‘눈높이’란 말을 합성한 ‘국민눈높이’란 어휘야 말로 대표적인 성스럽고 거룩하며, 모든 경우를 세심히 가려 사용해야 하는 말이다. 이번 한덕수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표류’의 주요 걸림돌 역시 이런 차원에서의 자기의 비호식 적용이라고 생각된다. 입만 열면 ‘국민눈높이’를 강조하는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언행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합당했었는가 등을 되돌아 봤으면 어떨까 싶다.
‘국민의 눈높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공정한 시선(視線)’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공정한 잣대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는 누구인가?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8,31 부동산 대책을 진두지휘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국민눈높이’의 소신파 총리였던 인물이다. 또한 40여 년간 무려 4개 정부에 연이어 고위공직자의 소임을 완수한 정통 엘리트 관료이다. 입지전적 인물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이후 총리 적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여소야대의 정치형국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과의 협치와 ‘무난한 인준’을 마음에 두고 한덕수 후보자를 낙점(落點)했다고 공식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특히, 팬데믹과 글로벌 경제의 악화, 통상마찰의 심화, 열강간의 세력다툼 속에서 최적의 적임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로 봤던 것이다. 야당과 여당을 넘나들며 국정에 참여하며 보여준 한 후보자의 경력과 공과를 높이 평가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후보자를 절대 다수의 의석수를 앞세워 한덕수 후보자‘를 밀어내고 있으니 잣대가 달라도 한참 다른 모양새이다.
국어사전에는 공정(公正)의 뜻을 ’공평하고 올바름‘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잣대로 평가돼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느 특정인들의 입맛(?)에 맞춘 평가나 이해타산을 앞세운 판별이라면 결코 그 같은 선택과 결정이 ’올바른 것‘일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同義語)인 것이다.
한덕수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뜻은 과연 어느 쪽일까? 심사숙고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