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大國) 기질이 뛰어나 '고추가루 뿌리는 행태'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글로벌 반도체 부문에서만큼은 사사건건 쫓아다니며 고추가루를 뿌리고 있다는 소릴 듣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동의 배경은 크게 두 세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 첫째는 미*중 간의 반도체 투자 경쟁이다. 미중간의 반도체 부문 투자및 유치 경쟁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인텔 등 굴지의 반도체 업체 대표들을 백악관으로 초치해 막대한 투자와 인센티브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인민회의 등에서 똑같은 발언을 공표했다.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이 반도체 쪽으로까지 옮겨온 형국이다. 두 번째는 경제성과 국익(國益) 문제이다. 4차산업의 확산 등으로 기존의 산업구조가 IT중심으로 대전환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한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의 선점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선제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세번째는 지구천에서의 패권싸움이다. 중복되는 해석일 수 있지만 결은 다르다. 지배자와 도전자의 입장이 예민하며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중국이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추진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기업 간의 인수*합병(M&A) 과정에 깊숙이 간여하면서 제동을 걸고 있다. 고추가루를 뿌리고 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도가 급격히 높아지자 미국을 포함한 유럽연합 등 글로벌 지배 국가들은 거래규모가 수 조 ~수십조 규모의 글로벌 업체 간 M&A에 제동 장치를 만들었다. 글로벌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 간 인수*합병(M&A)는 이해 관계가 얽힌 주요 국가의 反독점 규제 당국으로 부터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합의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제동장치인 셈이다. 중국은 바로 이 조항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상당 업체들이 계획을 무산시키거나 좌초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의도적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비난도 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세계 GPU(그래픽 반도체) 1위 기업인 엔미디어의 경우이다. 엔미디어는 지난달 말 중국정부에 영국반도체설계업체인 ARM에 대한 인수승인 신청서를 제출햇다. 엔비디아는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ARM을 400억달러(약 45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 유럽 등 9개국으로 부터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인수 발표 당시 엔비디아는 "8개월 내에 인수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지까지 난항 중이다. ARM은 중국사모펀드와 설립한 합작법인으로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상무부와 국가시장 감독총국의 심사를 필히 받아야 하는데 아직 불투명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같은 과잉 조치가 삼성, SK이노베이션 등의 대미 반도체 투자와 맞물려 자칫 '불똥'으로 튈 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