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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없었으면 황희 정승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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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없었으면 황희 정승도 없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정승 황희는 몇 차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1427년 사위 서달이 아전을 구타하여 죽은 사건이 일어나자 황희는 동료 정승 맹사성에게 사건의 무마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황희는 파직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430년에는 사헌부에 구금된 태 석균의 일에 개입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는 등 황희에게는 몇 차례 정치적 위기가 있었다.” 신병주 저(著) 《참모로 산다는 것》 (매일경제신문사, 38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황희는 고려 후기에 태어나 태 조, 태종, 세종 시대까지 관료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90세까지 살면서 24년간 정승의 자리에 있었고, 이 중 19년간은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 습니다. 87세에도 영의정을 지낸 것 역시 최고의 기록입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수많은 인물이 영의정을 거쳐 갔지만 황희는 영의정의 대명사로 또한 청백리의 상징으로‘영원한 영의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황희는 사실 청렴한 재상이 아니었습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비석군"> 김광부 @ 조선왕조실록 보면 사간원 사헌부의 단골 탄핵 대 상이 황희였습니다. 탄핵의 내용은 뇌물 수수와 관직 알선입니다. “황희는 청백리 정승으로 이름이 높지만 한때는 매관매직과 뇌물 수수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등(중략) 오점을 남겼던 것이다.”(38쪽)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1427년 황희의 사위 서달이 아전을 구타하여 죽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 황희는 동료 정승 맹사성에게 사건의 무마를 부탁하고,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파직 당합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세종 12년 1430년에는 제주관리 태석균이 관리의 잘못으로 말 1천마리를 죽이자, 황희에게 뇌물을 주고 비호를 부탁하였습니다. 황희는 이를 용인했다가 파직당하고 맙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세종의 용서와 덮어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황희 정승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용서하심이 없었다면 우리 모 두도 소돔과 고모라같이 멸망했을 것입니다.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김광부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1:16) <경건 메일>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 "팽나무"> 김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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