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만평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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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매너가 취업 성공을 만든다!서울지방보훈청 제대군인지원센터 기업협력팀 엄소영 필자는 하루에 적게는 2~3건, 많게는 7~8건의 채용공고를 온라인 상에 게시한다. 직무나 근무조건에 따라 지원자의 있고 없고는 천차만별이다. 3월은 게시한 공고에 비해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지원자가 너무 없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 즈음에 지원자의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 이력서, 내용: 지원합니다, 첨부파일명: 이력서.hwp』 제대군인들은 전역 전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갖는다. 그 중의 하나가 ‘입사지원서 작성방법’이다. 내용에 대한 완성도도 물론이거니와 이력서 파일명, 이메일 제출시 커버레터 작성법 등이 포함된다. 보통 파일명은 ‘기업명+지원분야+성명’으로 구성하고 제목은 ‘귀사의 ○○○직무에 지원합니다’로 하며 내용은 간단한 역량 어필과 함께 첨부파일 오류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락처를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필자가 받은 지원자의 메일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담당 상담사에게 보내는 것이기에 망정이지, 기업으로 바로 제출하는 상황이었다면 메일에서 드러나는 첫 이미지부터 호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 지원하는지를 알아야겠기에 구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력서 제출해 주셨는데, 어디에 지원하시는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글쎄요, 내가 어디에 지원했더라? 거기가 어디라구요?” 필자가 실제 기업의 인사담당자라면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이력서를 휴지통으로 옮겨버릴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의외로 자주 발생한다. 특히 취업에 조급함을 느끼는 구직자에게서 이러한 상황은 종종 접할 수 있다. 또 다른 구직자는 다른 직무의 채용공고에 이력서를 각각 접수하였다. 그런데 직무가 다르고 요구되는 역량도 각각 다른 직무인데 이력서의 내용은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것을 제출한 것이다. 통화해 보니 어디에 지원했는지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만큼은 너무나 분명해서 더욱 안타까웠다. 구직에 대한 의지가 높은 것은 좋지만 ‘어디에’ ‘왜’ 지원했는지 본인조차 모른다는 것은 분명히 큰 오점이다. 운 좋게 면접 제의까지는 받는다 해도 면접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빠른 취업을 원할수록 구직활동에 대한 기본부터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은 꼭 교육이나 상담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해 봐야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을 비추어 봤을 때 나는 어떤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등등... .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이나 정리한 후에 취업기본교육을 이수한다면 더욱 좋다. 교육을 통해 적어도 나의 간절함이나 적극성이 기본을 갖추지 못한 메일 한 통, 전화 한 통에 평가 절하되어 버리는 참극은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첫만남에 매너가 필요하듯이 기업과 구직자의 첫 만남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제시한 구인 요건에 관심을 갖고 이력서를 제출한다면, 보다 매너있게 본인의 구직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채용 직무에 맞는 자신의 역량과 취업에 대한 의지를 이력서에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메일 한 통을 보내더라도 어디에 지원하는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리고, 자신이 지원한 곳을 리스트업 해 두었다가 기업과 첫 통화를 하게 될 경우 당황하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부디, 제대군인들이 매너 있는 구직활동을 통해 취업에 대한 높은 의지가 퇴색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떤 일이든 성공의 첫걸음은 기본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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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월 혁명은 ‘두 번째 해방’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김윤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은 시작한다. 헌법의 주요 이념인 4·19민주이념이 무엇인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이념이길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6·25전쟁의 총성이 멎은 지 불과 7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1960년은 전쟁의 아픔과 가난이 공존하던 시절로 국민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인데 사회 전반·전 세대에서 민주 시위가 가능하였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첫 번째로 언론의 영향력을 꼽을 수 있다. 1950년대 언론인들은 최대의 지식인 계층으로 대부분이 이승만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다양한 논설, 사설, 칼럼을 통해 민주적 가치를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환기시켰다. 두 번째는 높은 교육 수준으로, 1948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정부의 국가 총예산의 평균 10.5%가 교육 관련 지출이었고, 교육을 통해 그 누구라도 신분이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빈민층일수록 학구열이 높았다. 세 번째는 도시화와 매스 미디어의 보급을 들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수많은 탈북민이 남한에 정착하고 인구 구조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열 개 남짓의 도시들이 수 배의 급격한 인구 성장을 보였고, 교육받고 깨어있는 국민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되면서 이들은 밤을 새워 시국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개탄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청년실업 문제로, 대학을 졸업한 훌륭한 인재들조차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고, 사회 전반·전 세대에서 이승만 정부에 대한 지지를 조금씩 철회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렇듯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 갔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여전히 장기 집권을 바라고, 야당과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데만 급급한 행보를 보였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4·19혁명의 촉발은 필연에 가까웠다. 4·19혁명은 한국의 역사에서 일반 대중이 봉기하여 정권을 쓰러뜨린 최초의 사건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첫 승리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며, 어떤 역사학자들은 8·15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월 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4·19혁명은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두 번째 해방’으로부터 63년이 흐른 오늘날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퇴보한 면모도 보인다. 4월을 맞이하여, 언론이나 매스 미디어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높은 교육열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 교육을 통해서 누구라도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배운 사람’들은 사회문제에 적극 뛰어들고 비판하면서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지, 사회 전반·전 세대가 서로 갈라치기 하지않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민주주의를 외친 그날의 함성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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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며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이주영 전세계를 괴롭히던 코로나19도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병원과 약국을 제외한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고, 4월로 접어들며 흐드러지게 날리는 벚꽃과 속속 개최되는 벚꽃축제들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날이다. ‘4년 만에’, 또는 ‘다시’, ‘회복된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속속 등장하는 뉴스들을 보며 2021년 3월,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대구에서 지내던 나는 이 ‘4년 만에’와 ‘다시’라는 말을 듣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협력이 있었는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하여 IMF 금융위기, 또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던 6·25전쟁 이후에도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힘을 합쳐 다시 대한민국을 일으킨 불굴의 민족이자 기적의 민족. 그 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혹한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온겨레가 일제에 맞서싸운 ‘3·1운동’과, 그들의 자주독립 염원을 실체화시킨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다. 1919년 도시와 농촌 곳곳에서 전개된 3·1운동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많은 민족 지도자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각지에서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 되었고, 1919년 4월 11일 독립운동 대표자 29명이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회의를 열고 4월 13일 출범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이다. 비록, 내부적 갈등과 일제의 위협 등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지나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27년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구심점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역사적인 조직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삼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 정부였던 우리의 뿌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다가오는 4월 11일은 104주년 수립일을 맞는다. 작년 3월 1일, 서대문구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공식적으로 개관하기도 하였는데 이번 기회에 가까운 곳에 방문하여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불굴의 민족 뿌리를 한번 더듬어보는 건 어떨까. 다시 이 찬란한 4월의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피와 눈물을 흘리신 애국선열들께 자연스레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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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에 최선을" 다하는 단체장을, 원한다. !!국민의힘 당 김기현 지도부가 출범한지 20여일이 되었는데.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이 추월당했다고 여론들이 시끌벅적하다. 청년세대 지지율이 추락하는 것은 근로제등 악제가 겹쳐 정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나온다. 청년세대도 중요하고 40대. 50대. 60대. 70대. 중요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고 한다면 중요하지 않는 세대가 어디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지방자치 시대에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복지 향상에 노력하는 자치 단체장을 원하는데. 현 정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게 문제인것 같다. 어느 특정 지역은 그 지역 색깔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양상이다. 그러니 실력이 없는 한 심한 사람들이 당선이 되어 단체장이라고 명함 돌리며. 지역 현안 사업이 무엇인지도 파악 못하고 목과 어깨에 힘만 주면 되는 얄팍한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들 한태는 불행한 일이다. 몇일 전에 국가의 장래가 걸려 있는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지역 발표를 정부에서 하였는데. 수도권에 많은 지역이 포함되었으며 지방에도 균형을 잡은 듯 보였다. 어느 지역에 국가 산단이 발표되는게, 중요하지 않다. 그 지역 단체장이 얼마나 역량있게 수행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때. 지지율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치 단체장들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리에. 자기 혼자 잘살겠다고 도둑질하고, 자기 주머니 채우기 위해 주민혈세 갈취하는. 단체장들 추천하거나 선출시키는 의원님들 각성하고 반성해야 될 일이다. 호남에 어느 지역은 전. 현직 단체장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데. 한 분은 집행유예 2년. 한 분은 검찰 구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현실에 글 문이 막힌다. 이러한 내용들이 다시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국민누구나 현실에 충실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인기주의에 빠져있거나, 여론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정당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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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해수호의 날을 기리며서울지방보훈청 복지과 이인섭 3월은 봄이 시작하는 따뜻한 달이기도 하지만 3.1절과 같이 우리나라를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세계에 단 하나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다. 동해, 남해 그리고 서해. 그중에서도 서해는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가장 슬프고도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유엔군은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을 설정하여, 남방한계선과 함께 전쟁 방지를 위한 완충지대를 구성했다. 서해의 북방한계선은 서해 5개의 섬(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 황해도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설정되었으나, 북한이 이 5개 섬들의 주변수역을 북한의 연해라고 주장하며 침범하였고, 이로 인하여 제2연평해전(2002.6), 천안함 피격(2010.3), 연평도 포격(2010.11) 등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그런 아픈 기억들을 위로하고, 고귀한 희생을 한 분들을 추모하고자 우리나라는 2016년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제정하였다. 국가 수호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며, 서해수호의 날을 맞이할 때면 한미 국방당국은 대규모 기동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전국에서 서해수호의 날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지금도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의 영공을 침범하는가 하면,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8번째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그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국민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전선에서 굳건히 서있는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