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내 이름은 오은이야?” 흐느끼며 반문했다.
“오금은 저리고 오동은 나무니까.” 아빠가 나를 꼭 안으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거짓말처럼 울음이 그쳤다.
오은 저(著) 《초록을 입고》 (난다, 5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오은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한 산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
신의 이름이 왜 오은이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고
합니다.
“오금은 저리고 오동은 나무니까. 너는 오은이다.”
알 듯 말 듯한 금, 은, 동 해석입니다. 그런데 그 답을 듣자 울음을 그
쳤습니다. 그가 시인이 되어 말을 굴리고 굴려 마침내 시가 되게 하는
그 실력도, 아버지가 물려주신 피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아버지를
통해 집에서 받은 시 연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대답은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실은 아들의 이름 하나를 두고 벌인 첫 번째 시
수업이었습니다.
금메달도 은메달도 동메달도 아닌 자리, 오금과 오동 사이
그 애매한 틈에 아들을 슬쩍 앉혀 놓으신 셈입니다. 말이란 밥과
같아서 날마다 밥상머리에서 굴러다니다가 아이의 혀에 붙고, 혀에서
뼈로 옮겨 붙고, 어느 날 문득 시가 되어 걸어 나옵니다.
이 땅의 모든 시인 뒤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우기고 싶
어집니다. 시집 맨 뒤에 붙는 해설은 평론가가 쓰지만, 시집 맨 앞에
놓인 첫 문장은 대개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툭 던진 실없는 농담 한마
디였습니다. 아버지의 말장난은 그 자리에서는 썰렁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의 가슴속에서 삼십 년쯤 묵으면 어느 날 시가 되어 걸어 나옵니다.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오늘 저녁 밥상에서 시답잖은 소리 한마디를 자신
있게 던져 보십시오. 그 시답잖은 말이 언젠가 ‘시가 답인 말’이 될
지도 모릅니다. 금메달은 못 걸어 줘도 자식 이름 하나에 금과 은과
동을 다 넣어 주는 사람, 그가 아버지이니, 이 땅의 아버지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